헤테로토피아를 위한 “Think local, Act global”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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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인어 꼬리만 반쯤 나온 세탁기들이 즐비합니다. 서울 어느 빨래방을 그대로 옮긴 듯한 이 공간을 마주한 순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인어와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세탁기가 뒤섞이며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다시, 대안공간으로 향하다 

젠더의 경계와 자본주의적 욕망을 비튼 미국 작가 올리비아 얼랭어의 ‘IDA, IDA, IDA!’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통의동 대림미술관의 대형 패널엔 ‘구찌(Gucci)’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구찌 없는 구찌 전시’로 불리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전(展)’은 구찌가 서울의 복합적인 예술 생태계와 다채로운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 프로젝트입니다. 

전시는 시청각, 합정지구, 통의동 보안여관, 탈영역우정국, 취미가 등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10곳을 비롯해 메리엠 베나니, 세실 B. 에반스, 이강승, 올리비아 에르랭어, 마틴 심스까지 5명의 해외 아티스트에 이르는 15팀의 작품으로 이뤄집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르 미켈레는 신진 작가나 숨겨진 예술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동시대적 미학으로 올드해진 구찌는 물론, 글로벌 패션 신을 전복시킨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시대적 호기심이 한국의 인디 아티스트와 독립·대안예술공간에 닿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얼마 전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몇 해 전부터 한국의 문화 생산자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조사해 보니, 주류 시장과 제도권이 주도하는 미술계의 대안으로 독립 예술 공간들이 활성화돼 있더라. ‘정상’이란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들의 공간적 철학에 흥미를 느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안공간은 미국에서 1960년대에 시작된 미술 운동의 하나였습니다.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과 본질적인 거리를 두는 한편,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과 각성을 요구하던 작가 그룹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것이 정설이죠. 이는 비주류와 예술가들이 최전선에 나서야 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진보적인 분위기와도 같은 궤를 취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태동은 언제부터일까요. 사실 이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출발점을 1990년 후반으로 봅니다. 몇몇 외국 유학파들이 IMF체제로 들어선 한국의 상황에서 창작과 전시 활동이 어려워진 젊은 작가들에게 공간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때론 창작지원비까지 후원하는 ‘또 다른 이름의 갤러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 풀, 대안공간 섬,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이 문을 열면서 한국의 대안공간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기업이 후원을 맡은 쌈지 아트스페이스, 공공기관이 지원하는 인사미술공간이 생겨났지만 예술문화복지 정책지원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오고가는 사이 재정난으로 사라지는 공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예술계의 대안독립공간들은 최근 로컬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지역기반의 공간들로 각자의 맥락을 가지고 독립적인 생태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느슨한 연대’를 통해서 말이죠. 

 

미국에서 시작된 메이커운동, 한국의 DIT 운동으로 이어져

<‘구찌 없는 구찌 전시’로 불리는‘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전(展)’은구찌가 서울의 복합적인 예술 생태계와 다채로운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구찌 없는 구찌 전시’로 불리는‘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전(展)’은

구찌가 서울의 복합적인 예술 생태계와 다채로운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최근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교수에 따르면 로컬 크리에이터란 ‘창의적인 골목길 소상공인’, 즉 지역혁신가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저마다 뚜렷한 철학과 자기다움으로 장인정신이 깃든 창의적인 스몰 비즈니스를 전개하며 점점 다양한 골목길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했던 대량생산에 의한 성장 지상주의로 발전한 경제, 기업, 사회에 전례 없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시공인, 건물주, 운영자가 현장에서 하나의 팀으로 모여 창의적인 공간을 완성시켜가는 이른바 ‘DIT(Do It Together) 마을재생’으로 이어가는 이들의 방식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메이커 운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메이커(Maker)’는 미국 최대 IT 출판사 오라일리 공동창업자였던 데일 도허티가 2005년 DIY 잡지 ‘MAKE’를 통해 제시한 말로 이전처럼 제조기술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디지털 기기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창작자’를 의미합니다. 

그는 메이커 운동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인 ‘메이커’가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흐름을 통칭한다고 정의 내렸습니다. 마치 지금의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며 경쟁이 아닌 연대의 방식을 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주목하는 도시가 바로 ‘포틀랜드’ 입니다. 

수염, 맥주, 타투와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힙스터의 도시로 알려진 포틀랜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보단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묻는 포틀랜드에선 ‘커뮤니티’라는 표현이 ‘업계’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Keep Portland Weird’가 도시 슬로건인 이 도시에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은 남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성일 것입니다. 

포틀랜드는 다양한 로컬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켜가는 메이커 운동을 기반으로 스몰 비즈니스 산업을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맞물리며 미국 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전 세계적 열풍이 불기 시작한 킨포크 매거진의 성공은 세계화와 성장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게 됩니다.  

포틀랜드에 사는 작가, 화가, 농부, 요리사 등 지역주민 40여명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킨포크 매거진은 처음엔 500부로 시작했지만 출간 3주 만에 디지털 매거진 방문자가 600만 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수많은 독자가 이들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킨포크 추구하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라이프스타일, 즉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힘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죠. 이는 마케팅과 브랜딩을 하는 방식을 넘어서 경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에도 큰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킨포크 소비 방식은 이면에 담긴 맥락이 아닌 소위 인스타그램 허세 컷으로 불리는 킨포크식 사진 찍기 정도에 그치며 다양한 담론으로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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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을 은유한 올리비아 얼랭어의 작품.>

유럽발 밀레니얼식 사회주의의 대두 

자본, 자원, 노동 등 물질의 소유가 힘의 근원이었던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 내는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 대부분은 육체적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서는 인간의 창의력과 디지털 네크워크 및 미디어 활용 능력이 모든 힘의 근원이 되고 있죠. 그 결과, 빈부 격차도 없고 세대, 성별, 국가의 경계가 모두 붕괴된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비대해진 자의식은 점차 이전과는 다른 욕망과 자극을 좇아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허핑턴 포스트 US’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자본주의란 책임지지 않고 세상을 파괴한 부자를 뜻하고 사회주의는 그렇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동시대 사회주의의 배경을 분석했습니다.

글로벌 초연결시대에 가장 강력한 소비 세력으로 급부상한 이들은 이러한 밀레니얼식 사회주의에 대한 태도를 소셜을 기반으로 연대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격차로 인한 체감온도가 낮은 국내 기업과 기관의 의사결정자들은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김누리 교수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68혁명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68혁명이란 1968년 미국, 유럽에서 일어난 사회 변혁 운동으로, 프랑스에서는 평등, 성해방, 인권,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등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68혁명은 파리, 베를린, 로마 등 유럽 주요 도시 뿐만 아니라,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LA 등 미국 도시, 그리고에 태평양을 건너 도쿄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위 히피문화, 혹은 힙스터의 도시라 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교 시절 이런 문화혁명을 거친 유럽의 기성의 주류권들은 아마도 한국인들보다는 근대를 이해하는 데에 반세기 정도 앞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수많은 성장통을 겪으며 이제야 획일화를 조금씩 벗어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는 맥락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주류권의 붕괴를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범주 안에 두며 체감하기 시작한 기성세대들을 동참시키며 일부 젊은 층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 모두의 담론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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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표지들을 활용한 이강승의 작품.>

나다움의 성찰, SDGs 달성을 위한 ‘Do it together’

소유보다는 생산 과정과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점차 맛집 자체보다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요리 과정을 찍어 올리기 시작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로 아카이빙하는 이른바 ‘나카이빙’에 의한 소셜 페르소나를 소유하고 드러내고 싶어하지요. 

마찬가지로 무엇을 소유하고자 할 때도 독창적인 스토리가 있는 페르소나인가는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다움은 나를 과시하거나 외면만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로 귀결됩니다. 

구찌는 이번 헤테로토피아 전시를 통해 지금 시대 우리에게 ‘실재하는 유토피아’, 즉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교류하며 바람직한 미래를 일굴 헤테로토피아를 새롭게 정의하길 재촉하는 듯합니다. 브랜드가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동시대적 방식으로 말이죠. 이는 글로벌 초연결시대 속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금 MZ세대와 함께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비슷한 세계관을 가졌다면 대기업과 기성 언론, 소상공인, 소비자와 같은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로 경계를 허물며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향한 새로운 ‘헤테로토피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성찰도 함께 말이죠. ​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